한국일보 11월29일자 체험르포(40분걸려 땅속......)
작성일 : 2005-11-29 조회수 : 20,056
40분 걸려 땅속 400m로… 굉음·탄가루 속 희망 캐낸다
[체험 르포] 막장에 가다
3명이 한팀…1명이 하루 8톤 채탄, 8시간 교대근무…10년차 月300만원
"애들 외자유학 보람에 힘든 줄 몰라"
산전수전 다 겪고 인생의 끝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라 하여 '막장(광산이나 탄광 갱도의 막다른 곳)'이라고들 했다. 거기서 삽을 잡은 이들은 한때 고도 성장을 일궈낸 주인공이었지만 지금은 점차 잊혀져 가고 있다.
한창때 348개나 됐던 전국의 광산은 정부의 감산 정책으로 현재 7곳만 남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도 막장에서 희망을 캔다. 지난 23일 수요일, 막장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07:30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동덕생산부 본부 대기실(해발 280m)로 짙은 회색 작업복 차림의 광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하루 2교대(오전반 7시 30분~오후 3시 30분, 오후반 3시 30분~11시 30분)로 하는 막장 채탄 작업의 오전 근무조다. 투입 인원은 84명.
간단한 안전교육과 지시사항 전달이 끝나자 쩌렁쩌렁한 구호소리가 대기실에 울려 퍼졌다. "무재해로 가자. 좋아! 좋아! 좋아!"
칼끝처럼 매서운 바람에 잔뜩 웅크리고 있던 기자에게 강신호(53) 계장의 호통이 떨어졌다. "엄살 좀 그만 떨어요. 10분만 지나면 추위가 그리울 걸요."
아니나 다를까 와이어 로프에 달린 인차(人車)를 타고 18도 경사의 갱도 레일을 따라 내려가자 금세 사방이 암흑천지가 되면서 저 지하에서 후끈거리는 열기가 올라온다.
얼마쯤 들어갔을까? 갱도 갈림길에서 'M.L(평균 해발) -122'라고 쓴 푯말이 나온다. 해수면보다 122m 아래에 있다는 얘기다. 지면고도까지 포함하면 지하 400m 지점. 다시 수평 갱도를 따라 2㎞ 정도 이동하자 채탄 작업장이 나타났다. 40분이 걸렸다.
08:30
3명이 한 팀을 이뤄 석탄을 캔다. 15년차 이상의 숙련된 채탄원 1명이 선임을 맡고 2명이 보조 역할을 한다. 작업 공간은 너비 3.8m, 높이 2.56m의 아치형이다. 그리 좁지는 않지만 고막을 찢는 듯한 요란한 기계음에 쉴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탄가루로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먼저 착암기로 석탄 원석에 구멍을 내고 폭약을 설치한다. 그 다음에 발파를 해서 쏟아져 내린 석탄을 쓸어 담는다. 15kg짜리 착암기를 작동해 봤다.
'위잉~'하는 굉음이 하도 요란해 초당 50회를 회전한다는 날카로운 비트(절삭공구)가 사정없이 구멍을 낸 줄 알았다. 그런데… 별로 패인 흔적이 없다!
"아이고, 기계만 잡고 있는다고 구멍이 저절로 뚫리나? 체중을 실어야지…. 체중을!" 보기에 딱했는지 채탄원 박철규(53)씨가 훈수를 한다. 작업복은 한 시간도 안 돼 흠뻑 젖었다.
밀폐된 지하공간에 고여 있는 메탄이나 이산화탄소 같은 가스는 최대의 위험요소다. 3년 전 이곳에서 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도 가스가 원인이었다. 장일환(51) 생산부장은"성냥과 라이터를 갖고 들어가는 것은 동료까지 죽이는 살인행위입니다"라고 강조했다.
12:00
슬슬 바깥 공기가 그리워질 무렵 오전 작업이 끝났다. 점심은 갱도 한쪽 우묵한 곳에 따로 설치한 휴게실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땅 속 100m 아래에 이런 아늑한 시설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온수기도 있어서 컵라면을 싸 가지고 와서 먹는 이도 있다.
15:30
레일을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에 탄가루를 퍼담는다. 삽으로 담기도 하지만 대개는 기계식 자동삽이 맡아서 한다.
8시간의 고된 하루 일과를 접고 다시 갱 밖으로 나간다. 각자 샤워를 하고 집으로 향한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격려의 말을 서로에게 건네며. 이들이 하루에 캐는 석탄은 1인당 평균 8.4톤. 3명이 함께 하는 한 작업장에서 2톤짜리 적재 차량 12대 분이 나오는 셈이다.
근속 연수와 기능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10년차 채탄원의 봉급은 280만~300만 원 수준. 수당을 포함한 기본급이 70%이고 나머지는 일한 만큼 성과급으로 받기 때문에 1980년대에 비해 생산성이 배나 높아졌다.
고단한 삶이지만 이들은 꿈을 꾼다. K(50)씨는 본부에서 1㎞ 떨어진 사택에 혼자 살면서 강릉 시내에 고등학생 남매를 유학시키고 있다.
"15년 전 사업에 실패하고 이곳까지 흘러들어왔어요. 그 땐 희망이란 게 없었는데 요즘은 그게 보일 듯합니다. 주말 부부 신세지만 내 힘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합니다."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월급의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K씨처럼 자녀를 동해, 강릉, 심지어 서울로까지 보내 교육시키는 사람이 많다.
서명길(51) 도계광업소장은 "석탄산업을 사양 산업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지금 추세라면 2008년에 정부 비축탄도 바닥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고유가 시대에 석탄 산업은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재도약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도계는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의 무대가 됐던 곳이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쇠락한 탄광촌은 아니었다. 탄가루로 범벅이 된 얼굴, 얼굴들 사이에는 희망이 숨쉬고 있었다.
도계 =김이삭기자 hiro@hk.co.kr
입력시간 : 2005/11/28 19:51
수정시간 : 2005/11/29 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