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민일보 11월28일자 석공도계광업소 현장르포
작성일 : 2005-11-29 조회수 : 19,644
땅속 3300m서 희망을 보았다
[현장 르포] 삼척 주재 김형곤기자 도계鑛 채탄작업 체험
경기침체와 유가 급등으로 서민 가정을 중심으로 한 연탄의 수요가 증가하고 발전용 무연탄의 사용량이 급증하며 석탄 산업이 모처럼 활기를 띠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폐광지역에 생기가 돌면서 광부들이 오랜 만에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삼척주재 김형곤 기자가 석탄공사 도계광업소에서 일일 광부 체험을 통해 캄캄한 막장에서 검은 희망을 캐고 있는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가 봤다. 도계광업소는 정부의 증탄정책에 따라 올해 3만5000t의 무연탄을 증탄한다는 계획으로 280여명 광부들이 굴진과 채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막장 3인1조씩 하루 8시간 24t 채광
수요 늘고·서민가정에 도움 일할 맛
입구로부터 3300m, 수직거리 450m, 평균 기온 32도의 푹푹 찌는 듯한 더위 그리고 캄캄함. 이곳이 바로 막장이다.
싸늘한 새벽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오전 8시 석탄공사 도계광업소의 3개 생산부 중 하나인 동덕 생산부에 입갱을 위해 도착했다.
인차(광부를 실어 나르는 기차)에 몸을 맡기고 18도 경사의 굴 속으로 끝없이 들어간다.
30분쯤 들어왔을까! 다시 다른 인차를 갈아타고 또 30분을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눈과 하얀 치아만이 반짝거리는 막장 작업자들이 큰 소리로 '안전'을 외치며 반갑게 맞아준다.
해수면보다도 122m가 낮은 이곳은 지열 때문에 한여름의 열기처럼 느껴지는 32도의 찜통 그 자체다.
더구나 채탄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갱수로 인해 습도 또한 높아 불쾌지수 100%.
난생 처음 들어간 막장에서 임봉빈(51) 생산과장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줬다. 임 과장은 이곳에서 20년간 검은 희망을 캐온 경력자이다.
임 과장은 막장 작업자들과 함께 입갱, 하루 8시간 동안 모든 과정을 점검하고 그들의 안전까지 책임져야 하는 말 그대로 '붙박이'이다.
"엄청 덥죠? 아무리 에어컨을 가동해도 이놈의 갱온도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아요"라며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했는지를 한번 더 점검해 준다.
"예전에는 마스크도 없어서 젖은 수건을 입에 감고 일했는데 요즘은 많이 좋아진거죠. 그때 이런 마스크라도 있었으면 지금 진폐환자들이 많이 줄었을 겁니다"라며 열악했던 80년대의 작업 환경을 설명했다.
임 과장을 따라 5분 정도 걸어 들어가자 긴 갱도의 끝인 막장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를 숙이고 들어간 그곳은 질퍽거리는 바닥에 엄청난 양의 석탄 가루들이 안전모 라이트의 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크로스라고 불리는 이곳은 3명의 작업자가 한조를 이뤄 하루 24t의 무연탄을 캐낸다.
임 과장은 "직접 보시니 어때요? 연탄 한장이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라면서 "우리가 흔히 '인생 막장'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이런 힘든 환경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라며 막장 작업자들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커피나 한잔 합시다"라는 임 과장의 말에 "아니 이곳에서 어떻게 커피를 마셔요"라고 물어 보려다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지하 450m에 휴게실이 있다. 냉장고도 있고 따끈한 커피도 마실 수 있는 그런 휴게실이다.
"하루 8시간 일하는데 점심을 먹으러 다시 갱 밖으로 나올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만든 곳입니다. 가끔 작업 중 힘들면 쉬기도 하고…. 아 그리고 이 곳에서 옷도 갈아입지요. 온도가 32도라서 하루 3벌의 작업복이 필요합니다."
"이때라도 마스크를 벗어요"라는 임 과장의 말에 얼른 마스크를 벗었다.
막장에 들어온 지 불과 1시간 여 지났는데 마스크에는 엄청난 양의 석탄 가루가 들러 붙어 있었다. '마스크가 아니면 이것들이 이미 몸속에 들어갔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니 벌써 폐에 뭔가가 걸려 있는 느낌이다.
임 과장 손에 이끌려 다시 막장으로 향했다.
운송용 갱도는 가로 3.3m, 높이 2.7m로 다소 넓지만 막장은 더 좁은데다 각종 채탄을 위한 장비로 가득해 허리를 펴기도 어렵다.
이곳에서 3명의 작업자가 하루 종일 발파를 하고 운송용 차량에 탄을 싣고, 굴진을 위한 갱을 조성한다.
한 막장 작업자는 "석탄을 캐놔도 팔리지 않아 일하면서도 신이 나지 않았으나 요즘은 수요가 크게 늘어 일할 기분이 난다"면서 "내가 캔 석탄으로 어렵게 사는 서민들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작업을 마치고 다시 인차에 몸을 싣고 밝은 세상으로 나오는 길에 '연탄 한장의 소중함'과 이들이 캐고 있는 것은 무연탄이 아니라 '검은 희망'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삼척/김형곤 bio@kado.net
기사입력일 : 2005-11-27 2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