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이해석 기자 화순탄광 '채탄원 체험'
갱도마다 냉장고.정수기 … 59세 정년 보장
"인생막장은 이제 옛말이죠"
20일 전남 화순탄광 갱 안에서 운전원이 석탄 운송 차에 석탄을 싣고 갱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날 하루 채탄원들은 270t의 석탄을 캤다. 화순=프리랜서 장정필
탄광에 다시 생기가 돈다. 기름값이 계속 오르면서 연탄 소비가 늘어나 채탄원들의 일손이 바빠졌다. 본지 취재팀이 채탄원들과 함께 막장까지 들어가 석탄을 캐는 과정과 달라진 세태를 체험했다.
20일 오전 7시50분 전남 화순군 동면에 있는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 갱 입구(해발 159m)에서 채탄원 등 33명이 와이어 로프에 매달린 인차(人車)에 몸을 실었다. 채탄원들은 20도 경사의 가파른 갱도 레일을 따라 8분 동안 1300m를 내려간 뒤 하차했다. 그리고 평탄한 갱도를 따라 1분 정도를 걸었다.
다시 갱내 차를 타고 경사지게 500m가량을 이동해 다다른 곳은 해수면 기준 지하 395m의 갱도. 갱 입구로부터 따지면 수직으로 554m 아래 땅속이다. 다시 1000여m의 평평한 갱도를 걷자 한쪽 벽을 5평 정도 파 만든 휴게실이 나왔다. 탁자.의자뿐만 아니라 냉장고.정수기.선풍기가 있고, 커피.설탕 등도 놓여 있다.
안내를 맡은 구태홍(42)씨는 "예전엔 갱도 바닥에서 도시락을 먹었으나 요즘은 휴게실에서 식사하고, 옷도 갈아입는 등 갱내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휴게실에서 다시 500m를 지나 오전 10시쯤 최전방 작업장인 막장에 도착했다. 갱 입구로부터 3500m 지점이다.
채탄을 준비하는 '채준조' 세 명이 칠흑같이 어둡고 비좁은 폭 3.5m, 높이 2.5m의 공간에서 안전모에 달린 플래시 불빛에 의존, 석탄 원석을 깨뜨려 길을 내고 철제 지지대를 세웠다.
'위잉-.' 폭약 넣을 구멍을 뚫는 착암기 소리가 요란해 귀가 멍멍하다. 오후 4시 교대시간까지 작업해도 1m 전진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착암기를 잠시 멈춘 김모(51)씨는 "연탄 수요가 늘어난다니 요즘은 일할 기분이 난다"며 "나 같은 사람이 있어서, 서민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보람도 느낀다"며 밝게 웃었다.
이어 500m 정도 떨어진 또 다른 막장을 찾았다. 채준조가 파 만든 갱도의 위를 폭파, 석탄이 무너져 내리게 한 뒤 컨베이어 위에 석탄을 얹어 100여m 떨어진 석탄 운반차(3t)에 싣고 있었다. 이곳은 실제 석탄 채취가 이뤄지는 곳으로 마스크를 썼지만 숨을 들이쉴 때마다 탄가루가 폐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수직으로 100m 내려갈 때마다 기온이 3도씩 올라가는 바람에 갱도 안은 한여름 같았다. 채탄원들의 얼굴은 시커먼 탄가루와 땀이 범벅이 돼 눈과 이만 하얗게 드러났다. 작업복을 두어 번 갈아입지 않으면 땀에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한다.
이날 채탄원들이 오후 2시40분 교대할 때까지 캔 석탄은 총 270t. 1인당 평균 8.2t, t당 8만5000원씩 약 70만원어치씩을 캔 셈이다.
채탄작업의 현장 책임자인 전민승(40) 생산계장은 "올 들어 작업효율을 높여 생산량을 지난해보다 늘리기 위해 작업시간 관리 등을 철저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달라진 막장 풍속도=한때 탄광 막장을 산전수전 다 겪고 마지막에 찾아오는 '인생막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요즘 탄광들은 입사 경쟁이 치열하다. 수입이 웬만한 중소기업 직원보다 많고, 정년까지 보장받아 안정된 일자리가 됐기 때문이다. 수입은 근속 연수와 맡은 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화순탄광 막장 안에서 석탄을 캐는 채탄원들의 경우 지난해 총 수입(세금 공제 전)은 평균 4500만원을 넘는다.
2004년 7월부터 주 5일 근무를 하고 있으며 국경일도 모두 쉬고 있다. 7년 전 3교대에서 2교대로 전환,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밤샘 작업이 없어졌다. 정년도 58세이던 것이 올해부터 59세로 1년 연장됐다.
자녀 두 명에 한해 대학교까지 학비를 지원받는다. 채탄원들의 연령대가 자녀들이 한참 공부할 때인 40대 후반과 50대 초반이 대부분인 점을 감안하면 좋은 조건이다.
화순광업소의 문재동(45) 안전과장은 "급여 등은 3D 업종 중에서도 가장 힘든 직종이 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는 갱 안에 휴게실을 만들고 막장에까지 선풍기 바람을 보내 주는 등 갱 안 작업 여건 또한 크게 개선됐다.
대한석탄공사 기획팀 이동길씨는 "갱도 지지대를 목재에서 철제로 바꾸는 등 안전조치를 꾸준히 강화, 사고도 대폭 줄었다"고 말했다. 석탄 생산 100만t당 사망자 수가 1970년 대 말 12.1명이던 것이 요즘은 1~2명이다. 또 채탄원들의 작업복은 세탁원들이 빨아 옷장에 걸어 놓는 등 갱도를 나선 뒤엔 샤워만 하고 집에 가도 될 정도로 후생복지 또한 잘 돼 있다.
화순광업소의 경우 직원 80%는 자동차로 20~50분 거리의 광주시와 화순읍에 살면서 출퇴근한다. 탄광 근처의 사원 아파트는 5분의 2가 비어 있다.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일을 끝낸 뒤 진폐증을 예방한다는 속설에 따라 돼지고기 안주에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탄광촌의 풍경도 지금은 사라졌다.
◆ 화순광업소=1934년 문을 열었다. 지난해는 27만2000t을 생산해 6만2000t은 20여 개 연탄공장에, 21만t은 충남 서천 화력발전소에 공급했다. 전성기 때는 채탄원 포함, 직원이 모두 1669명이었으나 지금은 693명이 일하고 있다. 채탄원 134명 등 탄광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272명이다.
이해석 기자 <lhsaa@joongang.co.kr>
2006.01.23 04:41 입력 / 2006.01.23 05:47 수정